
유럽 각국의 보안·정보기관이 러시아의 사보타주 조직망을 잇달아 적발하는 가운데, 러시아에서는 방화 등 각종 파괴공작이 급증하고 있다. 인폼네이팜(InformNapalm)의 공개출처정보(OSINT) 데이터베이스 ‘Fire’에 따르면, 2026년 들어 11월 6일까지 러시아에서 확인된 사보타주 사건은 242건에 달한다. 이는 2024년과 2025년 기록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런 상황은 유럽의 안보 논의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러시아가 배후에서 벌이는 파괴공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러시아가 침략을 계속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더욱 높일 방법도 있을까.
러시아의 공격 대상이 된 유럽의 기반시설
2026년 8월 에스토니아 방산업체 밀렘 로보틱스(Milrem Robotics)의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업체는 우크라이나에도 공급되는 무인 지상차량을 생산한다. 에스토니아 외무부는 9월 29일 에스토니아 국내보안국이 이번 방화를 러시아의 지시에 따른 범행으로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에스토니아 정부는 러시아 외교관을 초치해 공식 항의했다.
9월 14일에는 루마니아 브라쇼브(Brașov)의 산업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현장은 방산업체 CARFIL SA 인근으로, 이 회사는 방산그룹 ROMARM에 속해 있다. 루마니아 정보국(SRI)은 10월 26일 러시아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 사보타주 조직망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SRI에 따르면 이 조직망에는 여러 유럽 국가의 방산업체와 다른 산업시설을 대상으로 공격을 준비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이런 사건은 고립된 사례가 아니다. 국제대테러센터(ICCT)와 GLOBSEC 연구진은 2026년 2월까지 유럽에서 발생한 러시아의 사보타주 작전 151건을 기록했다. 집계 대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시작한 이후 발생한 사건이다. 9월 말에는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사건이 180건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실제로 실행된 공격뿐 아니라 실패했거나 사전에 저지된 공격도 포함된다. 대부분 방화 또는 폭발물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다만 데이터베이스의 기록이 늘었다고 해서 2026년 들어 실제 공격이 더 자주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연구진이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뒤늦게 확인해 추가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스토니아와 루마니아의 최근 사례는 러시아의 사보타주 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방위산업이 여전히 주요 공격 대상임을 보여준다.
스웨덴 동유럽연구센터(SCEEUS)는 10월 발표한 연구에서 러시아의 사보타주 활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사이의 연관성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러시아는 사보타주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방해하고 방산업체의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하려 하고 있다.
시설 파괴와 여론 조작에 이용되는 방화
러시아의 사보타주 작전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도 정보 환경과 여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상업시설을 겨냥한 방화 사건 수사는 이런 공격이 선전 활동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보여준다.
2026년 4월 폴란드 검찰은 사보타주 조직망과 관련된 사건에서 5명을 기소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 조직망은 러시아 정보기관을 위해 활동했다. 2024년 4월 바르샤바의 OBI 매장에 불을 지른 실행범은 범행 장면을 직접 촬영했다. 영상 일부는 러시아 선전 채널을 통해 공개됐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IKEA 매장을 겨냥한 방화 사건에서도 조직원들은 화재 현장과 소방당국의 진화 작업을 촬영했다. 이 영상은 선전 활동에 쓰려고 촬영한 것이다.
조직망의 또 다른 구성원은 2024년 5월 12일 바르샤바의 마리빌스카 44(Marywilska 44) 쇼핑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를 촬영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촬영한 영상은 지시를 내린 러시아 측 인물에게 전달됐다. 수사에 따르면 이들 사건에서 현장 촬영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현장 촬영도 처음부터 지시된 임무의 일부였다.
우크라이나 여권 소지자를 사보타주에 동원하는 방식은 러시아 측에 여론전에 쓸 소재도 제공할 수 있다. 2025년 11월 폴란드 철도에 대한 사보타주 사건 이후, 폴란드 디지털화부는 사건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려는 선전 활동을 확인했다. 이 캠페인은 폴란드 보안기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동시에 친러시아 성향의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이른바 ‘우크라이나 테러리즘’에 관한 주장을 퍼뜨렸다.
우크라이나 해외정보국은 2026년 11월 6일 러시아 측이 유럽에서 사보타주에 동원할 인력으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포섭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모집 대상에는 우크라이나 국민도 포함된다. 러시아 보안기관은 이런 방식으로 범행에 동원할 인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여론 조작에 활용할 새로운 기회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체포된 사람의 국적만으로 어느 국가가 사보타주를 지시했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개인의 행동을 근거로 우크라이나 난민 전체를 비난해서도 안 된다.
2026년 러시아에서 확인된 사보타주 사건 242건
러시아가 유럽에서 사보타주 활동을 벌이는 동안 러시아 내부에서도 비밀리에 이뤄지는 파괴공작이 늘고 있다. 인폼네이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공개출처정보 데이터베이스인 ‘Fire’를 운영해 왔다.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러시아에서 발생해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건들이 수집된다. 연도와 월, 날짜, 사건 유형, 공격 대상 유형별로 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
‘사보타주’로 분류된 사건은 연도별로 다음과 같다.
| 연도 | 사보타주 사건 수 |
|---|---|
| 2022년 | 35건 |
| 2023년 | 53건 |
| 2024년 | 110건 |
| 2025년 | 129건 |
| 2026년 11월 6일 기준 | 242건 |
인폼네이팜의 집계에 따르면 2026년 들어 확인된 사보타주 사건은 이미 2025년 전체보다 87.6% 많다.
2026년의 242건은 2024년과 2025년에 기록된 사건을 합친 239건도 넘어선다. 전면 침공이 시작된 이후 2026년 11월 6일까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된 이 범주의 사건은 모두 569건이다.
집계 대상에는 철도 신호용 계전기함, 러시아의 징병사무소, 통신탑을 겨냥한 방화 사건 등이 포함된다. 기반시설 파괴 행위도 기록돼 있다. 비밀 조직의 활동 중 공개적으로 알려진 다른 사례도 포함된다. 반면 러시아가 일시적으로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발생한 사건은 제외했다. 무인기 공격과 미사일 공격, 기타 유형의 사건도 별도로 분류한다. 따라서 이 통계는 러시아에서 발생한 모든 화재나 폭발, 군사 공격이 아니라 사보타주 사건에 한정된다.
특정 사건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됐다는 것은 공개된 자료를 통해 해당 사건이 확인됐다는 의미다. 이것만으로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배후에 있다고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보타주는 특정 이념에 따라 행동하는 비밀 조직이 독자적으로 실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각 사건의 책임자를 확인하려면 추가 증거가 필요하다. 데이터베이스는 지속적으로 갱신되며,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사건 발생 후 시간이 지나 새로운 기록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계는 러시아에서 공개적으로 확인된 사보타주 사건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기록의 증가만으로 러시아 내 비밀 조직 활동의 전체 규모를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러시아의 국내 보안체계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극적 방어에서 적극적 억제로
러시아는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데 드는 비용을 높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후방 기반시설 역시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 정부는 전략적 질문에 직면한다. 모스크바가 침략을 계속하는 데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을까?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는 2026년 3월 《From Shield to Sword – Europe’s Offensive Strategy for the Hybrid Age》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유럽의 기존 방어체계에 하이브리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수단을 결합할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조치와 정보 활동, 사이버 작전 등이 포함된다. 개별 시설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상대가 새로운 공격을 조직하는 일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1월 발표된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연구는 러시아의 사보타주 조직들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지 분석했다. 연구진은 실행범에게 자금을 전달하는 금융 중개자와 자금 전달 경로에 주목했다. 이런 경로를 사전에 파악하면 제재나 법적 조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개별 조직망을 무력화한다고 해서 사보타주 활동 전체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SCEEUS 연구원 민나 올란데르(Minna Ålander)는 10월 전통적인 군사적 억제력만으로는 무력 충돌에 이르지 않는 수준에서 벌어지는 사보타주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올란데르에 따르면 러시아 측 공작원들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고 모스크바가 치러야 할 대가를 점진적으로 늘리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대응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의 경험은 이 논의에 또 다른 측면을 더한다. 우크라이나의 국방 및 정보 역량을 지원하는 것 역시 러시아가 침략을 계속하는 데 따르는 부담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는 러시아 영토 내 합법적인 군사 목표물을 겨냥한 작전도 포함된다.
유럽에서 이어지는 러시아의 사보타주와 러시아 내부의 파괴공작
2026년 들어 두 가지 흐름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에 공포를 조성하고 기반시설을 교란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보타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동시에 러시아 영토에서 공개적으로 확인된 사보타주 사건도 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군사·경제적 전쟁 수행 능력을 뒷받침하는 시설을 대상으로 공격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인폼네이팜이 2026년 들어 러시아에서 기록한 사보타주 사건은 앞선 2년의 합계보다 많다.
통계상 증가세는 분명하지만, 이를 근거로 모든 성공적인 사보타주 작전의 배후에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러시아 후방 지역의 기반시설을 보호하는 문제가 모스크바에도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전을 시작한 것은 모스크바다. 러시아는 지금도 유럽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해 사보타주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도 자국 영토에서 사보타주로 인한 비용과 혼란이 커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수많은 잠재적 공격 대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부담도 갈수록 늘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의 수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방첩 활동과 공작원 조직망 및 자금줄에 대한 대응, 제재,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인 방위 역량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있다. 러시아 후방 지역의 취약성이 커지면서 모스크바의 비용 계산도 달라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제 다른 나라의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데 드는 비용뿐 아니라 자국의 기반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지출까지 고려해야 한다.
안드리 리시친(Andrij Lisitsyn)이 InformNapalm을 위해 기사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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