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귀통제(reflexive control, 반사통제라고도 함)는 상대방이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정보와 판단 근거를 조작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법이다. 이 개념은 1960년대 소련에서 발전했지만, 그 원리는 197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범죄자 프로파일링에 활용한 수사 기법과도 유사하다. 우크라이나의 분석가 류보우 치불스카(Ljubov Tsybulska)는 재귀통제 이론이 소련과 러시아의 군사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우크라이나에서 공포와 혼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인폼네이팜(InformNapalm)은 우크라이나 위기미디어센터(Ukraine Crisis Media Center)의 하이브리드 위협 분석팀을 이끄는 류보우 치불스카의 글을 소개한다. 이 글은 Uchoose.info에 처음 게재됐으며, 인폼네이팜은 2020년 11월 18일 다시 소개했다. 따라서 글에 등장하는 사례와 평가는 집필 당시의 상황을 기준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FBI의 범죄자 프로파일링과 행동 유형
1970년대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범죄자 프로파일링을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했다. 기본 발상은 간단했다. 검거된 연쇄살인범과 성범죄자의 심리적 특성을 분석해 공통된 행동 유형을 파악하면 유사한 범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원문에 인용된 당시 통계에 따르면 연쇄살인은 미국 전체 살인 사건의 약 1%를 차지했다.
수사관들은 범죄자들의 행동에서 여러 공통점을 발견했다. 일부 연쇄살인범은 성적 동기로 범행을 저질렀고, 일부는 자신과 같은 인종 집단에 속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피해자의 소지품을 가져가거나 범행을 되새기기 위해 사건 현장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범인에게 적용되는 특징은 아니었지만, 이런 단서는 특정 용의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됐다.
FBI는 이 지식을 활용해 수배 중인 살인범의 반응을 유도하고 검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과 협력해 의도적으로 허위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통해 용의자가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됐다. 존 더글러스(John Douglas)와 마크 올셰이커(Mark Olshaker)는 저서 《마인드헌터(Mindhunter)》에서 이러한 수사 과정을 다뤘다. 이 책은 동명의 TV 시리즈의 원작이기도 하다.
범죄자 프로파일링의 핵심은 상대방을 면밀히 연구해 사고방식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당시 FBI가 사용한 수법은 재귀통제의 원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블라디미르 레페브르와 재귀통제 이론
그러나 소련 연구자들은 FBI가 범죄자 프로파일링을 발전시키기 약 10년 전부터 재귀적 사고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소련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심리학자이자 수학자 블라디미르 레페브르(Vladimir Lefebvre)는 재귀적 게임 이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960년대 재귀통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한쪽이 다른 쪽에 의사결정의 근거를 제공하는 과정.”
당시는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정보는 초강대국들이 경쟁하는 또 하나의 전장이 됐다. 양측은 기술적·군사적 성과를 과시하며 서로를 압도하려 했고, 정보기관과 언론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소련과 미국은 자국의 힘을 과시하고 상대를 위협하는 동시에, 군비 지출을 늘리도록 압박해 상대국 경제에 부담을 주려 했다.
소련은 서방 정보기관을 의식해 군사 퍼레이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는 탄두가 실제보다 훨씬 거대해 보이도록 만든 가짜 탄도미사일을 선보였다. 서방이 소련의 미사일 전력을 실제보다 강력한 것으로 오인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는 상대를 조종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준다. 재귀통제의 목표는 상대방이 자신의 결정이 외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행동을 바꾸도록 만드는 데 있다. 상대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불리하고 공작을 벌인 쪽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상황을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소련의 군사이론가들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 군사이론가들은 이 방법을 깊이 연구했다. 필자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관련 저술만 해도 수십 편에 이른다. 재귀통제라는 용어는 러시아군 총참모부의 전략 문서에도 등장한다. 이 이론에는 상대가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상황 자체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법까지 포함된다.
러시아 군사이론에서 다루는 재귀통제
러시아 국방부가 발행하는 군사 전문지 《보옌나야 미슬(Военная мысль·군사사상)》 2020년 10월호에는 해군 작전과 관련해 재귀통제를 다룬 글이 실렸다. 이 잡지의 주요 독자는 고위 장교와 군사교육기관 교관들이다.
사회학자 이리나 시트노바(Irina Sitnova)는 이 글에서 해군 작전 중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인지적 문제를 설명한다. 군인은 집중력을 잃거나 일시적인 기억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해야 할 일과 그 순서를 잊기도 한다. 시트노바는 간단한 계산이나 논리적 추론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짜 백치’(false idiocy)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장애가 함정 승조원 전체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적에게 영향을 미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적이 우리의 행동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 착각을 일으키고, 전투 상황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며, 의사결정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하거나 스스로 불리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임무와 무관한 문제에 주의를 돌리게 할 수 있다. 재귀통제는 언제나 무의식적 과정과 관련돼 있다.”
시트노바는 이러한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수단도 나열한다.
“기만과 위장, 무력 과시, 전투준비태세 강화, 민감한 지역으로의 병력 이동, 허위정보 유포, 공포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문 확산, 그리고 군인·경찰·보안기관 요원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는 수법.”
핵심은 적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정보와 상황을 통해 적이 공격자에게 유리한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서방의 유사 개념, 인식 관리
재귀통제와 비슷한 서방의 개념으로는 ‘인식 관리(perception management)’가 있다. 특정한 상황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 국방부 문서는 이를 외국의 대상 집단을 겨냥한 조치로 설명한다.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접근법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크렘린은 자국민에게도, 외국에도 재귀통제를 활용한다.
미국식 접근에서는 상대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보는 반면, 러시아 군사이론에서는 상대를 영향력을 행사할 대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는 특정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이러한 수법을 사용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호적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도 재귀통제 공작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관련 문헌에서는 인식 관리가 전략적 소통이나 공공외교와 함께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읽은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식 접근은 공격적인 전복 활동보다 소프트파워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원문은 또 FBI가 외국 세력의 인식 조작을 테러,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 간첩 활동 등과 함께 미국 국가안보의 여덟 가지 주요 위협 분야 가운데 하나로 분류했다고 소개한다.
원문 작성 당시 미국 사이버사령부의 정보책임자였던 마테오 마르테무치(Matteo Martemucci) 준장은 군인들의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간단한 사례를 제시한다. 현지 관습과 정치적 분위기를 이해하는 군인은 주민과 대화할 때 선글라스를 벗을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미국 군인이 감정 없는 로봇 같아서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인상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 사례는 인식 관리가 반드시 비밀공작이나 가짜뉴스 유포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은 행동 하나도 군대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심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언론의 역할
마르테무치는 2006년 9월 레바논에서 발생한 사례도 언급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전투기가 앞서 군사 목표물을 공격했던 장소에 여성과 어린이의 시신을 배치했다. 이스라엘이 무고한 민간인을 고의로 공격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마르테무치에 따르면 해당 장면을 담은 영상은 국제 언론을 통해 퍼졌고, 이스라엘의 공습을 문제 삼거나 비판하는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헤즈볼라가 국제 언론 보도를 이용해 군사적·심리적 효과를 키웠다고 해석한다. 다만 이는 마르테무치가 제시한 설명과 주장으로, 사건의 모든 정황이 독립적으로 확인됐다는 뜻은 아니다.
선전의 개념과 새로운 영향력 공작 수단
영국 학자 필립 테일러(Philip Taylor)는 저서 《마음의 탄약(Munitions of the Mind)》에서 인식 관리와 선전을 대체로 같은 범주에 놓는다. 오늘날 ‘선전’이라는 단어에는 강한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어 사용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테일러는 선전을 본래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본다. 누군가 자신의 목적에 유리하도록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역시 비슷한 정의를 사용해 왔다. 국가적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 집단의 견해와 감정, 태도 또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형태의 소통을 선전으로 설명한 것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확산을 비롯한 기술 발전으로 재귀통제를 구사할 수 있는 수단은 크게 늘었다. 우크라이나 위기미디어센터의 하이브리드 위협 분석팀은 우크라이나 정치 지도부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확산된 허위정보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 사례를 여러 차례 관찰했다. 선거 전후에 이러한 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심리전과 피로 누적, 사기 저하
민간인을 겨냥한 재귀통제에서 특히 위험한 요소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사기를 떨어뜨려 저항 의지를 꺾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 군사 전문지는 이와 관련해 ‘심리적 게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심리적 게임은 통제를 가하는 쪽과 통제를 받는 쪽이 일정한 규칙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그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무질서 게임’과 ‘부조리 게임’이다. 두 방식은 끊임없는 불공정감과 억울함을 불러일으켜 혼란을 조성하려 한다. 이 명칭들은 에릭 번(Eric Berne)의 유명한 저서 《심리 게임(Games People Play)》에서 따온 것이 아니다. 러시아 최고위 군 지휘부를 대상으로 한 전문 자료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우크라이나의 현대사에는 이러한 영향력 공작의 사례가 적지 않다. 필자는 러시아의 의도가 마치 사전에 짜인 각본처럼 실현됐다고 판단하는 두 사건을 살펴보려 한다.
2014년 일로바이스크 전투와 정보 혼란
2014년 일로바이스크 전투 당시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 부대들이 포위됐다는 보도를 반복했다. 포위된 병력을 뜻하는 러시아어 군사용어 ‘코텔(котёл·가마솥)’이 우크라이나 언론으로 전해졌고, 이후 우크라이나 정치인들의 발언에도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 불안과 공포가 확산됐다.
군인들의 가족과 친구들은 전선에 전화를 걸어 탈출하라고 호소했다. 진지를 버리고 상관의 명령을 따르지 말라는 요구도 이어졌다. 정보 공간에 퍼진 혼란은 우크라이나 측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필자는 이러한 영향력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본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장병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통로를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병력이 그 통로로 빠져나가려 하자 러시아군은 공격을 가했다. 원문에 제시된 수치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약 300명이 숨졌다.
2020년 노비 산자리와 코로나19 공포
2020년 우크라이나 폴타바주의 노비 산자리 주민들은 중앙정부에서 발송한 것처럼 보이는 편지와 메시지를 받았다. 중국에서 이 지역으로 이송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종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시위대는 귀국자들을 태운 버스에 돌을 던졌다. 공격 장면은 전 세계에 보도됐다. 러시아 언론은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확산하며 우크라이나가 질서를 유지할 능력조차 없는 취약하고 낙후된 국가라는 기존의 주장을 강화했다.
사회 내부로 향하는 분노와 불신
두 사례 모두 분노와 극심한 불공정감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인 자신들에게 향했다. 러시아 군사이론가들도 이러한 효과를 다뤄 왔다. 필자가 보기에 많은 우크라이나인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자국의 정치·군사 지도부에 있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국가기관 역시 사회 전체와 마찬가지로 영향력 공작에 노출돼 있었다.
끊임없는 정보 압박과 부정적인 뉴스의 범람, 일상 전반의 정치화는 혼란을 키울 수 있다. 제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사회가 갈라질수록 적에게는 유리해진다. 러시아의 외부 공격에 친러시아·친우크라이나 집단 사이의 내부 갈등까지 겹친 우크라이나에서는 특히 위험한 일이다.
‘모든 전선에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끝없는 싸움은 사람들에게 패배감과 절망을 안길 수 있다. 이런 감정이 쌓이면 저항할 의지마저 마비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역량을 적절히 배분하고, 또다시 ‘배신당했다’는 주장이 나오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이러한 영향력 공작에 더 잘 맞설 수 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때는 잠시 멈춰 누가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얻는지 자문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적이 우리를 분석하는 만큼 우리 역시 적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공세작전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재귀통제를 활용하면 침략자의 영토에서조차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다.
글쓴이: 우크라이나 위기미디어센터 하이브리드 위협 분석팀장 류보우 치불스카. 원문은 Uchoose.info에 게재됐으며, 인폼네이팜이 2020년 11월 18일 다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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